우리가 가진 건 시간이 전부니까
부자든 빈자든 고귀한 사람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단 하나. 그것은 시간이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시간에 구속당한다.
이것은 내가 멈추고 싶다고 해서 멈춰지지도 않고 내가 잠깐 정신 놓고 안 쓰고 있었으니 쓰지 않은 만큼 다시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다. 저축도 안 되고 당겨서 쓸 수도 없다. 어쨌거나 우리는 어떤 연속적인 흐름의 선상에 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앞에서 사람은 늙고 쇠약해진다.
어릴 때부터 나는 삶의 마지막 모습을 먼저 생각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나서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은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무얼 경험하면서 살고 싶은가.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가.
필멸이라는 운명은. 이 불확실성과 가능성으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가장 확실한 미래임에도 누구나 못 본 척 외면하는 미래다. 하지만 사람은 이 같은 운명을 직시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할 지를 알게 된다.
200세 시대가 온다고들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노쇠해지지 않고 건강하고 젊은 몸으로 생활할 수 있는 현실이 눈앞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때가 언제일지는 시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으며 생물은 언젠가 다시 자연을 위한 먹이가 된다. 이렇게 꾸물거리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내가 가장 젊고 힘이 있고 활기로 가득 차 있을 시기에 세상을 누리고 싶다
우리 세상에 있는 보편적인 삶의 모델은 정말 형편없다. 태어나서 사람 구실을 하게 될 때까지 몇 년, 실컷 학교에 다니다가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돈을 벌기 시작하는데 또 겨우 30년 정도 겨우 회사에 다니고는 늙고 지친 몸을 이끌고 나온다.
기대수명이 한 5~60대여서 삶의 기간이 정말 짧았던 옛날에는 이런 모델이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이 스물 다섯즈음에 당연하다는 듯이 적당한 짝을 찾아서 가정을 이루고 바로 자녀를 양육하며 50대에 회사에서 은퇴한다고 하더라도 남은 삶의 기간이 10여년쯤밖에 되지 않으니 국민연금에서도 돈을 좀 넉넉히 뽑아 주더라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고 시장이라는 발명품이 성장하던 시절이었으며, 부모가 은퇴할 때쯤이면 자녀들도 얼추 다 자라서 가정을 이루고 제구실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얼마 안 계실 노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람의 절대 수명이 늘었고, 시장이라는 발명품도 성숙기에 접어들어 있는 상태다. 그래서 이 모델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더 오래 산다. 하지만 그것이 건강하게 젊은 상태로 오래 산다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가장 젊고 좋은 시절에 온통 나의 삶을 남의 일을 해주는 것에 다 갖다 바치고 나서 이후에 대체 뭘 할거냔 말이다. 몸은 약해졌는데 거기다가 돈까지 없다면 완전 최악이 아닌가. 우리는 오래 사는 것을 리스크라고 하는 시대에 도달했다.
중요한 건 시간뿐이다. 우리가 가진 건 시간이 전부다. 앞으로 당신에게 남은 겨울이 몇 번일까? 나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로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당신에게는 어떤 가치가 가장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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